기술적 상상력을 듣고
소제목: 주어진 것은 없다.
2006년 11월 15일(수)
기술적(descriptive) 상상력인가? 아니면 기술적(Technical) 상상력인가? 강의를 듣기 전 매우 궁금했었다. 앙겔로스 노부스라는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진중권 교수의 강연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림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21세기의 문맹자”라는 명제를 제시하며 역사 속에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작되고 왜곡된 사진 사례를 보여주었다. 때로는 웃으며 한장씩 따라갈 수 있었고 강연이 지속되면서 이것을 보여준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강연노트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나서야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즉, 21세기는 어떤 것도 ‘주어진(given)’것이 아니라 ‘창조될 수(to create)’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의도로 활용하면 창조이며 이것이 왜곡된 의도에 쓰인다면 조작이 될 수 있겠다. 플라톤과 데카르트적인 사고에서 우리는 세계의 어떤 형상을 ‘인식’하는 것이며 우리의 생산 활동은 그것을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생명과학, 진화론, 정보기술 그리고 그것들의 융합기술의 발전은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사본인가의 경계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편, 인문학의 미래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고리타분하고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인문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인문학의 비전을 제시한 점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단, 강의노트와 달리 강의에서는 그에 대한 부연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이제 우리는 객체(object)를 인식하는 주체(subject)로서 인간이기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주체로서의 인간으로서 자신을 재발견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얼마나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에 투자하였는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다소 산발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의 머리를 맴돌았지만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명제를 제시한 점에서 이 강좌를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진중권 교수를 직접보고 그의 고견을 경청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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